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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스토리

월급쟁이로 살아남기

월급에 울고 웃는 직장인의 비애 

어제 대학원 송년회에 다녀왔다. 작년까지는 보이다가 올해부터는 공식자리에 안보이는 선배님들도 계시고 나이가 많든 적든 명예퇴직을 자랑스럽게 소개(?)하며 제2의 인생을 준비한다는 분들도 더러 계셨다.

'그래도 아직 20,30대라면 사정이 좀 나은 편이지'

'젊은 당신은 기회가 많잖아'

어제의 아쉬움과 씁쓸한 장면을 뒤로하고 오늘 사무실 출근하니 회사는 밀린 일로 전쟁터고 민원으로 머리가 아프다. 윗 사람들은 보고서가 형편없다고 다시 쓰라고 하고 새로운 일들을 아무렇지 않게 내려준다. 진짜 도망가고 싶다.  ㅜㅜ 


이쯤되서 한번 생각해 보자.. 직장인인 내가 회사를 그만두면 어떻게 될까.  내가 회사를 그만둔다면 얻는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일까?.. 


회사를 안가서 좋은 것은

일단 소속이 없으니 자유다. 구속된 몸이 아니니 홀가분하고 아침에 6시에 비몽사몽 일어나서 머리감고 옷 차려입고 출근할 일도 없다. 늦잠을 자도 되고 느긋히 일어나 커피한잔에 아침 드라마도 보고 애들 학교 데려다 줄 수도 있다.(애들은 좋아한다... 아빠가 같이 학교와서...)

하루종일 음악방송 라디오 들으며 빈둥거리다 라면도 끓여먹고 집앞 마트에 가서 기웃대며 쇼핑도 하고 뜨끈한 사우나에서 땀을 뺄 수도 있다. 정말이지 하루종일 쉰다. 머리가 띵해지고 허리가 끊어지도록 낮잠을 자며, 평상시  바쁜일 때문에 못 가봤던 영화관이나 재미있는 공연, 박물관도 구경할 수 있다. 

회사를 안다니니 옷은 정장도 필요없고, 청바지나 츄리닝이면 된다. 평상시 여유가 없어 여행도 못 다녔으니 여행도 한번 즐겨보자. 당장 집 앞 주차장에 있는 내 차에 시동을 켜면 동해안이니 서해안이니 금방 떠날 수도 있고 사람들 바글거리는 휴게소에 들러 눈을 감고 안마기에 등짝도 맏긴다...    어~ 시원하다..... 

'아~~~ 자유다... 내 맘대로 살 수 있다...'


회사를 안가서 아쉬운 것은

명퇴를 당했을 경우라면, 일단 출근할 회사도 소속이 없다. 출근할 수 있는 직장의 이름이나 명함의 직책은 둘째 문제이며 또 줄 명함도 없고...  --;;

주변에 회사 다니는 친구들과의 공통 분모가 없다보니 한 두번 만나면 할 말도 없고 실직자 신분으로 연락하니 친구는 한 두번 정도는 옛 정을 생각해서 회사앞에서 잠깐 외출해서 식사나 반주도 한잔씩 한다. 그러나 그걸로 끝이다.  (어쩌면 친한 친구나 동료라도  실업자인 사람이라면 공감대 형성도 어려운데 바쁜 업무 시간에 자주 찾아온다면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피할수도 있다.)

그런데 뭐니뭐니해도 중요한 것이 '돈'이다. 예전에 나는 한달에 2백만원 정도가 쥐꼬리만큼이라고 투덜대지는 않았던가. 그런데 그것이 이번달부터 완전이 없다. 통장에 꼬박꼬박 찍히지 않으니 불안하다. 

월급 2백만원짜리 직장인인 나는 다음달부터 당장 회사에서 2백만원을 안준다고 생각하니 정말 아쉽다.

지난달 애들을 위해 쓴 카드나 장인장모 식사비, 마누라 옷 사준다고 긁고, 마트가서 먹을것 사느라고 돈을 썼다. 그리고 애들 학원비는... 

'아~~ 쓸 돈이 없다 ㅜㅜ  아쉬운 소리 할 데도 없고, 돈 빌릴 데도 없고... '

이상은 내가 지금 당장 회사를 안 나간다는 가정하에 일상을 적어보았다.  그렇다면 현실로 돌아와서...  


기왕 '돈' 얘기가 나와서 그러는데 기본적으로 월급쟁이 직장인들의 지출은 그대로다. 매월 2백정도 들어가야 하는데 그것이 없으면 어려워지고 지금까지 쓰던 습관도 갑자기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근데 더 중요한 것은 '회사 다니는 맛'을 잊어버리는 자괴감이다. 지금까지는 아웅다웅 힘들더라도 출근하면 귀꼬리만큼이라도 '월급'나오고 직원들과 커피한잔 하면서 수다 떨고 구내식당에서 때되면 밥 주는 '회사 다니는 맛'을 잊어버린 허탈감이나 자괴감이 더 클지도 모른다. 

물론 힘든 프로젝트를 끝내고 수고했다고 술 한잔하는 성취감이나 보람도 없고.... 그냥 멍하니 집에서 누워있는 자유가 전부다. 

몇 십년 회사 다니다 정년퇴직 하신분들의 자살율이나 빨리 늙어버리는 모습이 괜한 이유는 아닐 것이다. 원인이나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다닐데가 없고 갈 자리가 없어서 그럴지도 모르고.... 

나야 그렇다치고, 어쩌면 당신도 직장을 떠나는 순간부터 위와 같은 '재미'나 돈이 필요한 현실이 당장 닥칠지도 모른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지금 내가 선택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은 다시 직장인이다. 월급쟁이다. 나도 그렇지만 보통 평범한 직장인들은  당장 회사를 떠날 용기가 없다. 끝.